철학자의 하루

철학자들의 하루를 따라가며, 사유하는 습관, 말하는 용기, 걷는 태도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 2025. 6. 18.

    by. 철학자의 하루

    목차

       

      철학자의 하루는 어떻게 평온해질 수 있을까?

       

      현대인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시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고요하고도 안정된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정보와 소음, 경쟁과 속도에 휩싸인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매일 조용한 기쁨을 갈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들의 하루는 오늘날 우리에게 특별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특히 고요한 즐거움과 소박한 식사, 진정한 우정을 중시했던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의 삶과 그의 ‘정원 공동체’는 이 시대의 치유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추구한 철학자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감각적 쾌락이 아닌, 고통이 없는 상태(아타락시아, ataraxia)와 불안이 없는 상태(아폰이 아, aponia)를 의미했습니다. 그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실천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정원’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에피쿠로스의 일상을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단순한 식사와 따뜻한 우정만으로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에피쿠로스와 ‘정원’의 의미: 철학과 일상의 연결

       

      기원전 341년, 에피쿠로스는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이후 아테네에 ‘케포스(Kēpos)’라는 이름의 정원을 구입합니다. 이곳은 단순한 사유지가 아니라 철학을 실천하는 공동체의 공간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과 친구들, 심지어 여성과 노예까지 차별 없이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럽고 단순한 삶’을 실천한 곳이 바로 이 정원이었습니다.

      정원은 단지 아름다운 식물들로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긴장과 욕망으로부터 떨어져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는 “고기를 먹는 것이나 사치스러운 향신료가 아니라, 빵과 물 한 잔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면 인간은 행복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정원에서의 삶은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의 장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의 속도와 효율 중심의 문화 속에서,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철학자의 하루’가 얼마나 단순하고도 의미 있게 구성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고전적인 모델입니다.

       

      소박한 식사의 가치: 욕망을 절제하는 연습


      에피쿠로스가 강조한 ‘쾌락’은 단지 감각적 쾌락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가장 높은 쾌락은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 비롯되며, 이는 욕망을 줄이는 데서 가능해진다.”


      그의 정원에서는 매우 간단한 식사가 기본이었습니다. 빵, 물, 때로는 치즈 정도가 식사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박함은 부족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욕망을 절제하는 의지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배가 고플 때 먹는 빵이 가장 맛있다고 말하며, 풍족함보다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기쁨이 진정한 만족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여유롭고 풍요로운 식사를 ‘행복’으로 여기는 반면, 에피쿠로스는 ‘덜 갖는 법’을 통해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현대 미니멀리즘이나 미식주의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건강한 삶과 마음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입니다.

      결국 그의 식사 루틴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철학적 명상과 자율성의 훈련이었던 셈입니다.

      우정이라는 영원한 쾌락: 정원 공동체의 중심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조건 중 하나로 우정(friendship)을 매우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친구 없이는 살지 않고, 친구를 갖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삶이다.”

      정원의 구성원들은 단지 철학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함께 식사하고, 고민을 나누며,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계급이나 성별의 차별이 없었고, 고통과 기쁨을 나누는 우정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이처럼 공동체 속에서 나누는 따뜻한 우정을 인생 최고의 쾌락으로 여겼습니다. 이는 현대인의 고립된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족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 소속감과 신뢰를 느끼지 못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에피쿠로스는 이미 2000여 년 전에 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혼밥, 혼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속에 깃든 고립감은 때로 심각한 감정적 결핍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 공동체는 이러한 감정적 공허를 치유할 수 있는 철학적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철학자의 하루 - 에피쿠로스의 정원 공동체
      철학자의 하루 - 에피쿠로스의 정원 공동체



      현대인이 정원에서 배워야 할 것들

       

      에피쿠로스의 하루는 겉보기엔 지극히 단조롭고 평범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심오한 철학과 의식적인 선택의 연속이 담겨 있었습니다. 욕망을 줄이고, 단순하게 먹고, 진정한 관계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루틴. 그것이 바로 에피쿠로스가 실천한 ‘철학자의 하루’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것들을 원하고 소유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만큼 더 불안하고 피로하며,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에피쿠로스의 정원처럼 소박함 속에서 충만함을 찾고, 우정 안에서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잠시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따뜻한 차 한 잔과 소중한 사람과의 대화를 나눠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가벼워지고,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소박한 식사와 진심 어린 우정이야말로 철학자의 하루가 추구했던 궁극의 쾌락이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회복의 열쇠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