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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은 혼자서만 이루어지는 걸까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철학자 중에서도 유난히 고독과 비관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매일 반복되는 중요한 일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산책이었습니다. 그것도 혼자 걷는 산책이 아니라, 그의 충실한 반려견 ‘아트만(Atman)’과 함께하는 산책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산책 습관에 주목하여, 단순한 일과를 넘어 그의 철학적 사유가 어떻게 일상 속에서 구체화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특히 개와의 교감을 통해 표현된 그의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실천적 태도를 조명하며, “과연 철학자는 누구와 대화하며 생각하는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함께 던져보겠습니다. 철학자들의 루틴이 단순한 일상의 일부가 아니라, 그들의 사상과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였다는 사실을 통해, 여러분의 하루에도 작지만 의미 있는 철학의 실천이 가능함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고립된 철학자의 반복되는 길 위에서
쇼펜하우어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냈습니다. 그는 사회적 인간이라기보다는 고립된 사색가였으며, 대중과의 접촉보다는 내면과의 대화를 중요시했습니다. 이런 그의 일상에서 가장 정기적이고 꾸준한 루틴은 바로 하루 두 번 이루어지는 산책이었습니다. 오전 11시와 오후 3시, 그는 프랑크푸르트의 마인 강변을 따라 항상 같은 경로를 걸었습니다.
이 산책의 가장 큰 특징은 혼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사람과 어울리는 대신, 언제나 반려견 아트만과 함께했습니다. 아트만은 산스크리트어로 ‘자아’ 혹은 ‘참된 자기’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쇼펜하우어는 개를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철학적 동반자이자 고요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진실하지 않다. 그러나 개는 순수하고 정직하다.” 이러한 인식은 단지 인간혐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적 관점, 특히 인간 존재에 대한 비관적 이해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산책은 철학자의 현실 인식을 투영한 행동이며, 동시에 실천적 저항의 루틴이라 볼 수 있습니다.철학자의 하루 - 쇼펜하우어의 산책과 개와의 대화 동물과의 대화 속에서 피어나는 사유의 가능성
쇼펜하우어의 산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개와 함께 걷는다는 행동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이 산책 시간 동안 자신의 철학적 관점, 특히 인간 의지와 고통에 대한 통찰을 실제 삶 속에서 되새기고 다듬는 사색의 시간으로 활용했습니다. 고정된 경로, 규칙적인 시간, 그리고 변하지 않는 동반자라는 조건은 그의 정신을 외부 세계의 소란으로부터 보호하고, 깊은 내면으로의 침잠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특히 개와의 관계는 자기중심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난 진실한 교류를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개와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고통과 의지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도 순수하고 해석되지 않은 생명과의 교감을 통한 위안과 통찰의 순간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개와의 대화’는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철학적 태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의지(Wille)’라는 맹목적인 에너지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 의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욕망을 극복하고 고요한 직관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상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는 인간처럼 허영이나 계산이 없기에, 철학자가 자기 철학을 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산책이 주는 철학적 힘 – 반복의 의지와 자유의 모순
하루 두 번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그 반복 속에서 인간 의지의 본질을 실감했습니다. 그의 철학에서 ‘의지’는 인간을 끊임없이 고통으로 내모는 근원적인 동력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욕망이 충족되면 또 다른 욕망이 생기고, 이는 영원한 결핍과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반복적인 산책은 역설적으로 자유의지를 벗어나는 훈련이기도 했습니다. 매일 똑같은 시각, 같은 경로, 같은 대상과 함께하는 산책은 욕망을 배제한 순수한 존재 상태로의 접근이었습니다. 그는 강변을 걸으며 더 이상 원하는 것도, 성취할 것도 없는 상태를 훈련했고, 그 안에서 오는 내적 고요함을 철학적 힘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또한, 이 산책은 외부 세계로의 탈출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와의 접촉을 새롭게 구성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억지로 어울리기보다는, 스스로 설정한 규칙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그의 ‘개인의 고립’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자율성’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에게 있어 산책은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니라, 존재론적 태도였습니다.현대인이 배울 수 있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루틴
쇼펜하우어의 산책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첫째, 철학적 사유는 고립 속에서도 가능하며, 오히려 그 고립이 사유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끊임없는 인간관계와 정보의 소음 속에서 피로감을 느낄 때, 쇼펜하우어처럼 자신만의 고요한 루틴을 설정해 보는 것이 삶을 다시 바라보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을 성찰하는 철학적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개와의 교류를 통해 인간의 위선을 벗어난 순수한 교감을 경험했고, 이는 그의 철학적 실천의 일부로 자리했습니다. 우리 또한 삶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동물과의 관계, 자연과의 접촉이 가져다주는 진정성을 다시 음미할 수 있습니다.
셋째, 반복되는 일상의 구조화가 가져다주는 내적 안정성입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걷는 루틴을 통해 외부 세계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사유의 중심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처럼 변화와 속도가 중요한 가치가 된 시대일수록, 오히려 반복과 정적임 속에서의 자유를 회복하는 방식은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철학자의 산책은 오늘도 계속된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글로 사고한 사람이 아닙니다. 걷고, 대화하고, 존재한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산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일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고통,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요히 살아가고자 하는 철학적 결단이 녹아든 실천이었습니다.
우리가 그의 루틴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철학의 엄숙한 선언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 속에서 사유를 구체화할 수 있다는 용기입니다. 개와 대화하고, 반복되는 길을 걷고, 나만의 리듬으로 세상과의 접촉을 조절하는 일은 비단 쇼펜하우어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철학자의 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일 아침, 핸드폰 대신 반려견의 눈을 마주하며 걷는 산책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혹은 점심시간의 짧은 산책 속에서 오늘의 감정을 되짚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와 욕망을 성찰하는 철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철학은 어렵지 않습니다. 철학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철학은,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 위에 있습니다.'철학자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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