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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인생, 두 개의 이름. 철학자는 왜 자신을 나눴을까?
‘진정한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평생 붙들었던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그는 실존철학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하나의 인생을 두 개의 일상으로 나누어 살았던 사람’이었다는 점이 더욱 인상 깊습니다. 낮에는 정중하고 예의 바른 시민 ‘쇠렌 키에르케고르’로 살아가고, 밤에는 철학적 글쓰기에 몰두하며 ‘가명’이라는 가면을 쓴 채 존재의 모순과 고통을 탐구했던 그.
철학자의 하루 - 키에르케고르의 두 개의 일상
이번 글에서는 ‘키에르케고르의 두 개의 일상’이라는 독특한 루틴을 통해, 그가 왜 철학을 위해 본명과 가명을 나눴는지, 그리고 그 일상이 어떻게 철학적 실존 사상과 연결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유명 철학자들의 루틴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을 넘어, 이들이 자신의 철학을 ‘어떻게 실천적으로 살아냈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독자 여러분께 “나도 이렇게 살아볼 수 있을까?”라는 철학적 영감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본명으로 사는 낮과, 가명으로 쓰는 밤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법학을 전공하며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경력을 쌓을 수도 있었지만, 일찍이 철학과 신학에 몰두하며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직접 출간한 대부분의 철학서적이 가명을 통해 발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죽음에 이르는 병》, 《두려움과 떨림》, 《반복》 등은 모두 ‘요하네스 데 실렌티오’, ‘콘스탄티누스 콘스탄티우스’ 등의 가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가명을 사용했을까요? 단순한 익명성 확보를 위한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철학적 존재로서의 ‘나’와,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낮에는 자신의 본명으로 시민으로 살아가고, 밤에는 자신의 사상과 고뇌를 철학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가면을 쓴 또 다른 자아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를 ‘문학적 가명’이라 불렀고, 이는 단순한 필명 이상으로 자신의 실존을 다층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처럼 두 개의 자아를 명확히 구분한 일상 루틴은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 하나의 실험장이자, 철학 실천의 도구였습니다. 그는 사회에서 부여한 이름과 역할에 갇히지 않고, 철저히 내면에서 우러난 질문을 다른 자아를 통해 풀어내는 방식을 선택했던 것입니다.실존의 고통, 가명을 통해 쓰다 – 글쓰기의 철학
키에르케고르의 저작 중 많은 부분은 철학적 성찰인 동시에 자전적 고백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분석하고, 신과 인간, 존재와 진리 사이의 간극을 고민했습니다. 이 모든 철학적 사유는 가명이라는 장치를 통해 표현되었기에 더욱 자유롭고 심오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두려움과 떨림》에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철저히 ‘요하네스 데 실렌티오’라는 인물의 시선에서 서술하며, 절대자의 요구와 인간적 윤리 사이에서 겪는 실존의 갈등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가명 사용은 단순한 거리두기가 아니라, 자신의 사유를 객관화하고 다면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철학적 전략이었습니다.
밤마다 그는 다른 이름으로 철학을 썼고, 그 안에서 실존의 모순, 신 앞에서의 절망, 사랑의 고통, 윤리의 한계를 담아냈습니다. 낮에 그는 사회적 인간으로 조용히 살았지만, 밤이 되면 글쓰기를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고통을 마주했습니다. 이 철저한 이중 루틴은 글쓰기를 통해 ‘살아내는 철학’을 구현한 독특한 방식이었습니다.키에르케고르가 선택한 고독의 형식 – 철학자의 은둔 일상
키에르케고르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그가 한때 사랑했던 레기네 올센과의 이별은 그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별 후 그는 자신만의 고독한 일상을 더욱 강화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분리된 삶’의 루틴이 본격화됩니다. 그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하고, 같은 카페에 들러 글을 썼으며, 다른 사람과 거의 교류하지 않는 고독한 철학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철학적 실존을 깊이 있게 사유하기 위한 조건이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이 아닌, 끊임없는 내면과의 대화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외부로부터는 단절되었지만, 글을 통해 자신과의 관계, 신과의 관계를 성찰하고 기록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실존’이라는 단어로 요약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존이란 단지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그가 매일 반복한 고독한 일상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가명이라는 장치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분해하고, 존재의 조건을 성찰했으며, 그것을 하나의 체계가 아닌 다양한 목소리로 풀어내며 우리에게 “실존이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임을 보여주었습니다.두 자아의 공존이 던지는 질문 –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살아가는가?
키에르케고르의 일상 루틴은 철학자들에게뿐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하루를 본명 하나로만 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직장에서는 하나의 이름으로, SNS에서는 또 다른 이름으로, 가족 앞에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현대인의 일상도 키에르케고르와 닮아 있습니다. 하나의 인생 속에 다중적인 정체성과 역할이 공존하는 시대, 우리는 그 안에서 ‘진짜 나’가 누구인지, 어떤 이름이 진정한 나의 실존을 담아내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가명을 통해 이러한 정체성의 복잡함을 탐색하고, 철학적으로 사유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방식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유용한 통찰을 줍니다.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억제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하나하나 들어 올려 마주보는 용기. 그가 매일 밤 다른 이름으로 글을 쓰며 자기 자신과 대화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만나는 여러 자아를 성찰하고 조율할 수 있습니다. 그 일상의 반복이 철학이 되고, 그 사유의 반복이 결국 ‘삶의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철학이란, 나를 복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키에르케고르의 하루는 단순히 낮과 밤의 루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철학자가 ‘하나의 이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인간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실존적 훈련이자 철학의 실천이었습니다. 본명으로 살아가며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가명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철학적으로 풀어냈던 그의 방식은 현대의 일상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철학을 학문이 아닌 삶의 형식으로 여겼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내면을 탐색하고, 가면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 했으며, 그것을 하루하루 꾸준히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구성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에게 루틴이란 정체성을 고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체성을 확장하고 깊이 있게 사유하게 만드는 통로였던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자아를 연기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다중적인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철학자는 우리에게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질문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의 삶에는 어떤 가명이 존재하나요?”'철학자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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