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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철학을 깨우는 순간
인생에서 병과 고통은 피하고 싶은 대상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오히려 깊은 사유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브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병약함과 고통으로 점철된 그의 하루는 평범한 활동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 하루하루는 오히려 그를 신학자이자 철학자, 그리고 수학자로서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철학자들의 루틴 – 일상에서 발견한 철학’을 주제로 한 이 글에서는 파스칼의 삶 속 일상과 철학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단지 위대한 수학자나 사상가로서의 파스칼이 아닌, 매일의 고통 속에서도 신을 사유하고 자신을 넘어섰던 한 인간의 루틴을 통해, 철학이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병약한 육신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사유
파스칼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만성 편두통, 소화장애, 신경계 질환까지 겹쳐 항상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고,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고통의 시간을 사유와 내면을 단련하는 시간으로 전환해냈습니다.
그의 하루는 짧은 수면과 통증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날씨가 나쁘거나 밤새 두통이 심했을 때는 아침 식사도 힘겨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른 아침 짧게 성경을 읽고 신 앞에서 침묵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파스칼에게 침묵은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를 감지하는 훈련이자, 고통 속 자신을 내려놓는 실천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침대에 누운 채, 종이를 옆에 두고 끊임없이 수학적 계산과 사유를 이어갔습니다. 그의 ‘파스칼 삼각형’과 '확률 이론'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그의 작업 공간은 단출했지만, 그의 정신은 언제나 숫자와 신, 그리고 인간이라는 세 가지 중심 주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고통은 그의 시간을 빼앗았지만, 철학을 빼앗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통을 통해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불완전함을 체감하였고, 그것이 곧 신의 필요성과 믿음의 절실함을 이끌어냈습니다.신은 루틴 속에 머문다
파스칼이 남긴 가장 유명한 문장 중 하나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입니다. 그는 인간이 자연 앞에서는 약한 존재이지만, 사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보다 위대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그의 하루 루틴 속에서 특히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그는 가능한 한 정해진 리듬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낮 시간 중 상태가 나아질 때면 앉아서 글을 쓰거나, 가까운 친구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사상적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그가 작성한 《팡세(Pensées)》는 그런 일상의 결과물이며, 신을 향한 깊은 내적 고백과 철학적 질문이 담긴 명작입니다.철학자의 하루 - 파스칼의 병약한 하루 속 신의 흔적
흥미로운 점은, 파스칼의 하루는 신앙과 철학이 별개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루틴 속에서 두 세계가 하나로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철저히 이성적인 사고를 하면서도, 그 이성이 결국은 신의 무한함 앞에 멈춰 선다는 겸허함을 지녔습니다.
그의 루틴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는 '기도'입니다. 그는 매일 짧은 기도문을 암송하거나, 고요한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고백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이 이성으로 닿을 수 없는 신비를 받아들이고, 고통조차도 신의 뜻 안에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믿음과 이성의 경계에서 살아낸 하루
파스칼은 철학자이면서도, 신학자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그는 과학과 수학의 언어에 능통했으면서도, 인간의 한계와 신의 필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루틴은 이성과 믿음 사이의 치열한 고민과 그 균형을 향한 여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며, 이성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믿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색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는 그 정점을 보여주는 사고 실험입니다.
이 사고 실험 역시 그의 일상 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묻고, 적고, 다시 묻고, 기도하고, 또 적는 반복된 루틴 안에서 사유의 방향을 정제해 나갔습니다. 병약함은 그를 침묵하게 했고, 그 침묵은 다시 질문으로 이어졌으며, 그 질문은 철학적 믿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듯 파스칼의 하루는 ‘무엇을 했느냐’보다는 어떻게 살아냈느냐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에게 일상은 결과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자 믿음의 공간이었습니다.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유의 불빛
파스칼은 단명한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고, 대부분의 시간은 병상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유산은 그 어떤 건강한 철학자보다도 더 깊고 넓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고, 사유 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통과 불편을 회피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파스칼은 고통을 통해 철학했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가운데 신을 마주했습니다. 그의 하루 루틴은 그러므로 단지 ‘철학자의 루틴’이 아닌, 고통을 살아내는 방식이자 초월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의 하루’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철학이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파스칼의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유독 조용하지만 강하게 다가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역시, 어느 하루가 병들어 있고 불안정하더라도 그 안에서 사유하고 기도하며 자신만의 신을 마주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루가 반복되며 루틴이 되고, 그 루틴이 삶의 철학이 될 때, 우리는 파스칼처럼 하루 속에서 신을 발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철학자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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