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하루

철학자들의 하루를 따라가며, 사유하는 습관, 말하는 용기, 걷는 태도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 2025. 6. 22.

    by. 철학자의 하루

    목차

       

       

      시작은 이불 속이었다 – ‘철학자의 하루’를 전복한 사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문장을 처음 떠올린 장소가 고대의 웅장한 학당도, 대학 강단도 아니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 위대한 사상가는, 자신의 위대한 철학적 발견을 ‘이불속’에서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철학자의 하루〉 시리즈는 늘 철학자들의 일상과 루틴에서 그들의 사유 방식을 포착해왔습니다. 이번 주제인 ‘데카르트의 이불속 철학 – 침대 위에서 사유한 세계’는 철학이 반드시 고된 수행이나 엄격한 시간표 아래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역설적 사례입니다.
      게으른 자세로 맞이한 아침, 그 느슨함 속에서 데카르트는 세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의심을 던졌고, 그 의심에서부터 새로운 철학이 출발했습니다.

       

      철학자의 하루 - 데카르트의 이불 속 철학
      철학자의 하루 - 데카르트의 이불 속 철학

       


      이번 글은 단순히 데카르트의 하루를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왜’ 침대 위에서 사유했고, ‘어떻게’ 그것이 철학이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 ‘이불속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왜 여전히 중요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게으름으로 철학하다 – 데카르트의 느린 아침 루틴


      데카르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활동 무대는 주로 네덜란드였습니다. 그는 사교를 싫어했고, 조용하고 통제된 환경을 선호했으며, 대부분의 아침 시간을 침대 속에서 보냈습니다. 이불을 걷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며 사유하거나 눈을 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세상은 진짜 존재하는가? 감각은 믿을 수 있는가? 나는 지금 깨어 있는가, 꿈을 꾸고 있는가?

      그의 대표작 『성찰(Meditationes)』은 이런 침대 위 사유에서 출발합니다. 데카르트는 아침의 고요한 정적을 사랑했으며, 그 시간대가 감각 자극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가장 깊은 사고가 가능한 시간이라 믿었습니다. 현대의 생산성 루틴이 ‘얼리버드’ ‘새벽 기상’ 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그는 깨어 있으되 움직이지 않고 생각만 하는 시간을 루틴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앉거나 누워서 생각하며 보낸다.”
      이것은 게으름의 찬양이 아니라, 몸을 멈춘 채 오직 의식의 작용만을 믿는 철학자의 선언입니다.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사유 실험을 수행했고, 결국 “의심하는 나 자신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선언이 탄생한 것입니다.

       

      루틴인가 회피인가 – 데카르트 사유 방식의 재해석

       

      누군가는 데카르트의 루틴을 ‘소극적’이라 평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하루의 느슨함은 사유의 집중도를 높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의 하루는 철저한 ‘비움의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고, 이는 오히려 사유의 밀도를 강화하는 방식의 루틴이었습니다.

      오전 대부분은 이불 속에서 생각하거나 책을 읽으며 보냈고, 오후에는 메모를 정리하거나 간단한 실험을 했습니다. 저녁에는 다시 긴 산책이나 조용한 식사로 마무리했으며, 사회적 약속이나 군중과의 교류는 철저히 제한했습니다. 철학은 그에게 사유가 아니라 생활이었고, 생활은 철저히 ‘생각을 위한 구조’로만 채워졌습니다.

      이 루틴은 단지 개인적인 기벽이 아니라, 데카르트가 철학을 수행하는 방식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사유의 결과를 적기 전에 사유가 오롯이 혼자서 완결될 수 있도록, 모든 감각을 제한하고 모든 외부 자극에서 거리를 두었습니다. 즉, 그의 루틴은 철학이 존재하기 위한 공간적, 시간적 조건을 창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스마트폰 알림과 업무 메일, 끊임없는 정보의 파도 속에서 우리의 사고가 중단되기 쉬운 시대에, 데카르트의 이불속 루틴은 사유의 공간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이불속에서 철학한다는 것 – 오늘의 독자에게 던지는 제안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게으르지 말자’, ‘일찍 일어나야 성공한다’는 압박 속에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일찍’보다 중요한 것은 ‘깊이 있게’ 사유하는 것이 아닐까?
      데카르트는 우리의 그런 신념을 전복합니다. 그는 아침의 침묵과 고요함을 ‘사고의 실험실’로 삼았고, 그곳에서 세계에 대한 의심, 존재에 대한 사유, 그리고 새로운 철학적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처럼 살아볼 수 있을까요? 물론, 현대 사회는 바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아침 단 10분이라도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생각해 볼 수는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의심하고 있는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진짜일까?”, “나는 무엇을 확신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지요.

      이것은 명상이 아닙니다. 의식적 사유의 반복이자, 철학적 감각을 회복하는 루틴입니다. 그리고 이 습관은 책상 위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느슨한 자리인 침대 위에서 더 잘 작동할지도 모릅니다.

       

      결말은 곧 새로운 시작 – 데카르트처럼, 나만의 생각 습관을 만든다는 것


      〈철학자의 하루〉는 단지 위인전이 아닙니다. 이 시리즈의 궁극적인 목적은, 독자 각자가 “나도 이렇게 살아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이불속 사유’라는 아주 평범하고도 느슨한 루틴 속에서 철학사를 바꾼 문장을 꺼내올 린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반복적인 고요의 중요성, 생각을 축적하는 일상의 가치를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하루는 생산성의 기준으로 보면 느리고 비효율적이었지만, 철학적 깊이로 보면 치밀하고 전략적인 구조였습니다.

      당신은 어떤 하루를 살고 있나요?
      만약 오늘 아침, 이불 속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나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이미 당신의 하루에도 데카르트의 철학이 깃들기 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