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하루

철학자들의 하루를 따라가며, 사유하는 습관, 말하는 용기, 걷는 태도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 2025. 6. 22.

    by. 철학자의 하루

    목차

      철학자의 하루 - 몽테뉴의 에세이 쓰는 하루
      철학자의 하루 - 몽테뉴의 에세이 쓰는 하루

       

      자기 자신을 향해 써 내려간 철학자의 하루


      16세기 프랑스 남서부의 성 안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정치를 떠나, 외부의 소란 대신 책과 종이, 그리고 고요한 서재를 벗 삼기로 결심합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그가 선택한 도구는 검이 아닌 펜이었고, 그가 꾸린 세계는 침묵과 문장이 흐르는 개인의 내면이었습니다.

      몽테뉴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최초의 ‘에세이스트’로 불립니다. “나는 나를 주제로 글을 쓴다”고 말하며, 매일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이해하고, 때로는 조롱하며 기록하는 사유의 일상을 실천했습니다.
      그의 글쓰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고, 저녁에는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을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몽테뉴에게 글쓰기란 자기 자신을 향한 대화이자, 철학 그 자체였습니다.

      〈철학자의 하루〉라는 블로그 시리즈의 취지에 딱 들어맞는 이 인물은, 루소 이전에 개인의 내면에 침잠했고, 데카르트보다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파고들었습니다. 그가 남긴 《수상록(Essais)》은 한 인간이 매일 자신의 삶을 어떻게 정리하고, 반성하며, 사유의 층위를 넓혀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철학적 기록이자, 일기와 철학이 만나는 자리에 피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정해진 시간표보다 느슨한 구조 : 몽테뉴의 하루는 어떻게 흘렀는가?

       

      몽테뉴의 하루는 전통적인 철학자들과는 달랐습니다. 스콜라철학자들이 정해진 기도와 학문 시간표 속에서 이성과 논리를 다듬었다면, 그는 삶의 흐름에 가까운 느슨한 구조 속에서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그는 명확한 일정보다는 반복되는 삶의 감각 속에서 사유를 끌어냈고, 규율보다 습관과 질문을 중심으로 하루를 구성했습니다.

      아침엔 일찍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몸이 원하는 만큼 잠을 자고, 일어나면 따뜻한 물을 마시고, 책 몇 페이지를 느긋하게 읽었습니다. 그는 문장 속에서 자신과 닮은 생각을 만나기도 했고, 반대되는 관점을 발견하면 그 차이를 사유의 재료로 삼았습니다. 이후엔 산책이나 조용한 방 안에서 혼자 생각을 정리하다, 오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 시간은 대개 3~4시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쓰지 않았고, ‘내가 나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쌓인 문장이 10여 년에 걸쳐 《수상록》이라는 전무후무한 철학적 자서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는 그 글들을 편집하거나 다듬지 않았고, 자신이 생각이 바뀌면 그 사실을 그대로 주석처럼 덧붙였습니다. 이 점에서 몽테뉴의 글쓰기는 완성보다는 과정 중심의 철학적 실천이었습니다.

       

      일상 속 철학, 사유의 재료는 나 자신


      몽테뉴는 철학을 일상 속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전쟁, 정치, 신앙, 죽음 같은 거창한 주제도, 친구와의 대화, 식사 중의 생각, 반려동물과의 관계처럼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그는 자신을 반추할 수 있는 질문을 끄집어냈습니다. 이 지점에서 그의 루틴은 단순한 글쓰기 이상의 가치를 갖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하루의 경험을 철학으로 전환하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령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왜 어떤 날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어떤 날은 미워할까?”
      “내가 슬퍼할 자격이 있는가, 혹은 내가 웃고 있는 이유는 충분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짜 가능한가?”

      이 질문들은 일상 속 감정, 행동, 생각에 대한 반응이지만, 그것을 철학적 글쓰기로 전환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삶 전체를 분석의 대상이자 사유의 장으로 확장시켰습니다.
      몽테뉴는 신념이나 명제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나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 모호함 속에서 자유롭게 사고하는 법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깊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우리는 자주 생각합니다.
      “글을 쓰려면 똑똑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쓸 말이 뭐가 있지?”
      하지만 몽테뉴는 말합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향해 써라. 그 안에 철학이 있다.”

       

      몽테뉴의 루틴을 현대적으로 실천한다면?


      그의 하루는 단순했지만 깊었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엔 그저 한적한 성에서 혼자 글을 쓰며 지내는 은둔자의 삶 같았지만, 실제로는 매일매일 자기 존재를 해부하고 재구성하는 정신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의 루틴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요?

      꼭 에세이를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일기 쓰기, 생각 노트 정리, 5분 자아 질문 루틴, 아침 1 문장 기록, 저녁 3 문장 반성 등의 방식으로 몽테뉴의 방식은 누구든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나는 나를 향해 쓰고 있는가?”입니다. 그것이 철학이 되려면, 반드시 완성될 필요도, 누군가에게 보일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사유가 중단되지 않는 것, 그리고 반복 속에서 나의 언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몽테뉴의 루틴은 비생산적이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는 당대 가장 생산적인 정신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수상록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철학자, 작가, 심리학자,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고, ‘자기 성찰의 글쓰기’라는 장르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는 평생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고, 그 하루를 정직하게 써내는 것.”
      그리고 그는 그 실험을 끝까지 완수해 냈습니다.

       

      철학자의 하루가 특별한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계속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하루〉 시리즈는 단지 일과표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아닙니다. 우리는 철학자들의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삶의 질서와 사유의 흔적을 찾고자 합니다. 몽테뉴는 그중에서도 가장 사적인 기록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철학을 건넨 인물입니다.

      그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생각하고, 정리하고, 질문하며, 끝없이 자신을 마주하는 끊임없는 내적 작용이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고,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방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하루에 10분만,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응답을 써보는 것. 그렇게 우리는 몽테뉴처럼 삶의 흐름 속에서 나를 철학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몽테뉴가 우리에게 던질 질문은 아마도 이것일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느꼈는가? 그리고 그것을 당신은 기록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