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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사유를 키웠습니다. ‘철학자의 하루’에서는 일상의 규칙과 사유의 관계를 살펴보며, 우리도 생각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합니다.
철학자의 하루 - 사유는 루틴 속에서 탄생하는가? 생각은 아무 때나 떠오르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아이디어는 산책하다가 문득 떠오른다”거나, “생각이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스며든다”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깊은 사유는 어느 날 갑자기 번개처럼 떨어지기보다 오히려 일정한 루틴 속에서 자주 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철학자의 하루’라는 블로그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의 삶과 습관을 살펴보았습니다. 고대 철학자들은 일정 시간 산책하거나 강의하며 생각을 키웠고,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철학자들은 규칙적인 독서와 글쓰기로 하루를 쌓았습니다. 현대의 사상가들조차 매일 같은 카페, 같은 산책길, 같은 작업실로 향했습니다.
과연 왜 그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유를 길러내려 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사유는 루틴 속에서 탄생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며, 철학자들의 루틴과 생각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고자 합니다.사유를 위한 ‘조건’이 필요했던 사람들
우리는 철학자라 하면 아무 때나 번뜩이는 영감을 얻어 글을 쓰고 토론을 벌이는 사람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유가 자라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어 두려 애썼습니다. 그것이 바로 루틴이었습니다.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 정해진 옷을 입고 같은 길을 산책했습니다. 그 리듬은 그의 사유를 돕는 ‘틀’이었습니다. 칸트가 스스로에게 주었던 루틴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물리적, 정신적 기반이었습니다.
니체 또한 산책을 통해 철학적 직관을 얻었다고 하지만, 그의 산책은 충동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를 걸으며 그곳에서 머릿속 생각들을 반복적으로 굴렸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깊은 층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루틴은 사유가 제멋대로 날아다니지 않게 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구조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루틴 속에서 생각이 자라는 방식
루틴이 어떻게 사유를 돕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사실 사람의 뇌는 새로운 환경이나 과도한 선택을 마주할 때 에너지를 상당히 소모합니다. 그러니 매번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보낸다면, 뇌는 환경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데 힘을 다 써버리고 정작 중요한 ‘생각하는 힘’은 남지 않게 됩니다.
철학자들은 이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았습니다. 데카르트가 침대에서 사유를 시작한 이유도, 보부아르가 매일 같은 카페에 앉은 이유도 같습니다. 몸과 환경이 안정되고 일정해야만, 생각은 오히려 더 멀리, 깊이 갈 수 있었습니다.
니체는 이를 두고 “생각을 위해선 산책길의 리듬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같은 속도로 걷고, 같은 길에서 같은 돌멩이를 밟는 동안 의식은 점점 사소한 것들을 잊고 본질로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루틴이 반복될수록 사유는 마치 길이 닦이듯 부드럽게 흘러갔습니다.사유를 위한 루틴, 하지만 결코 기계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오해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철학자들이 일정한 루틴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기계적인 규칙 준수가 전부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에게 루틴은 사유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구조였을 뿐, 사유 자체를 대체하지 않았습니다.
스피노자가 매일 렌즈를 연마하며 사유에 잠겼다고 해서, 렌즈 갈기에만 몰두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반복되는 손놀림은 오히려 머릿속을 정리하게 하고, 그 속에서 존재와 신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길어 올릴 수 있는 ‘배경음악’ 같았습니다.
또 쇼펜하우어는 산책을 너무 규칙적으로 하다가 오히려 사람들이 그의 생활을 지켜보며 웃음거리로 삼자, 일정을 일부러 틀기도 했습니다. 이는 루틴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걷는다는 행위’가 아니라, 그 걷기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었습니다.사유는 루틴에서 탄생하지만, 결국 질문은 스스로 던져야 한다
철학자들의 루틴을 따라가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일상의 패턴을 통해 생각을 자라게 했지만, 그 사유의 방향만큼은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루틴은 단지 공간과 시간을 정돈해 주었을 뿐, 사유는 그 속에서 자발적으로 피어나야 했습니다.
철학자들의 루틴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무리 규칙적인 하루를 살아도,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는다면 그 반복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루틴은 사유의 조건을 만들어주되, 그 속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왜 이것을 생각하는가?” 같은 질문을 던져야 비로소 철학이 시작됩니다.
결국 루틴은 생각을 싹 틔우는 화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 안에 무엇을 심고 가꾸느냐는 온전히 우리의 몫입니다.당신의 루틴 속에는 어떤 사유가 자라고 있나요?
지금까지 ‘사유는 루틴 속에서 탄생하는가?’라는 질문을 따라 철학자들의 일상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루가 보여주듯, 사유는 무질서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일정하고 반복되는 삶의 틀 속에서 더 깊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틀을 만들어도, 그 안에서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면 사유는 자라지 않습니다. 오늘도 같은 카페에 앉아 있다면, 같은 산책길을 걷고 있다면, 그 시간에 당신은 어떤 생각을 키우고 있나요? 그 반복 속에서 어떤 물음을 던지고 있나요?
철학자들의 하루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루틴을 가지세요. 그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때 비로소 생각은 깊어집니다.”'철학자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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