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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철학자들은 왜 고독을 습관처럼 유지했을까요? ‘철학자의 하루’에서는 철학자들의 일상 루틴 속에서 고독이 어떤 사유의 조건이었는지를 탐색하며, 우리도 고독을 통해 조금 더 깊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합니다.
혼자인 시간을 일부러 만든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고독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바쁜 업무가 끝난 뒤에도 친구를 만나거나 SNS를 통해 사람들과 계속 연결되려 하죠. 심지어 혼자 밥을 먹거나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철학자들의 일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일부러 확보했고, 그것을 일종의 습관처럼 유지했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대에서 현대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은 매일 일정한 루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루틴의 상당 부분에는 고독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고독은 그들에게 사유를 위한 조건이었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통로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철학자의 하루’라는 대주제 아래, 고독을 습관처럼 유지한 철학자들의 일상과 그 속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탐구해보려 합니다.
우리는 고독을 두려워하거나 불편해하지만, 철학자들은 왜 그것을 반복적이고 의도적인 삶의 일부로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고독은 어떤 사유와 깨달음을 낳았을까요?칸트와 쇼펜하우어, 철저하게 혼자 있는 법을 실천하다
임마누엘 칸트는 철저히 규칙적인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그 루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고독’이었습니다. 그는 강의를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 외에는 집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산책을 했습니다. 산책도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로 걸었습니다. 심지어 그 시간에는 누구도 동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혼자 걷는 동안 그는 온전히 사유에 몰입했고, 고독 속에서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쇼펜하우어 역시 하루 두 차례 산책을 하면서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는 개와 함께 산책했지만, 사람과는 거의 대화하지 않았습니다. 쇼펜하우어에게 고독은 무심코 따라온 상황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는 “군중 속에서의 고독이야말로 진정한 고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과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사유를 키우기 위해, 일부러 도시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면서도 그들과 철저히 분리된 채로 산책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독은 칸트와 쇼펜하우어가 만들어낸 루틴 속에 깊숙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반복하고 습관화함으로써 사유의 깊이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철학자의 하루 - 고독을 ‘습관’처럼 유지하는 철학자들 니체와 키에르케고르, 고독을 통해 스스로를 해부하다
니체에게 고독은 단순히 혼자 걷거나 방에 틀어박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산책을 할 때도 스스로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나는 정말 이 사상을 내 것으로 믿는가?” 그는 《즐거운 학문》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해부대 위에 올려놓고 해부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혼자일 때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친구들이나 가족과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도, 일정 시간 이상이 지나면 반드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고독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묻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는 “군중은 진리를 죽인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군중 속에서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의 가장 깊은 불안과 고민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어렵다는 뜻이었지요.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하루 일과 중 일정한 시간을 반드시 고독하게 보냈고, 그것이 그의 루틴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는 방 안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글을 썼고, 그렇게 태어난 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 같은 사유의 결실이었습니다.고독을 습관처럼 유지하는 이유, 그것은 두려움을 직면하기 위함이다
철학자들이 반복적으로 고독을 찾았던 이유는 사실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저 혼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혼자 있어야만 자신이 피하고 있던 생각들과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칸트도, 니체도, 쇼펜하우어도 모두 고독 속에서 불안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매일 마주하면서 자기의식을 한 층 더 깊게 내렸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혼자 있는 시간이 없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늘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정당화하고, 그렇게 살다 보면 결국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멈추게 됩니다. 아렌트는 그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매일 일정한 시간을 고독으로 남겨두고 신문을 읽으며 세상과 자신을 동시에 바라봤습니다.
철학자들은 고독이 불안을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불안 속에만 진짜 질문과 깨달음이 숨겨져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독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그 안에서 매일 스스로를 조금씩 다시 살펴본 것입니다.고독이 만들어낸 삶의 태도
철학자들의 고독 루틴은 단순히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었습니다. 루소는 고독 속에서만 진짜 자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숲길을 걸으며 혼자 생각에 잠겼고, 그렇게 고독을 사랑한 덕에 《에밀》과 《고백록》 같은 작품이 태어났습니다.
몽테뉴는 고독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친구들과의 만남을 줄였습니다. 그에게 고독은 마음의 거울이었습니다. 혼자 있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끝내 알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매일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글을 쓰며 자신의 내면을 비추었습니다.
이처럼 고독을 습관으로 가진 철학자들은 삶을 훨씬 신중히 바라봤습니다.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규범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일 묻고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독 속에서만 비로소 삶의 본질을 마주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당신은 오늘 얼마나 혼자 있었나요?
지금까지 ‘철학자의 하루’라는 블로그의 대주제 안에서, 고독을 습관처럼 유지했던 철학자들의 루틴을 살펴봤습니다.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키에르케고르, 루소, 몽테뉴, 아렌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고독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고독이야말로 스스로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그것을 매일 반복했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하루 종일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이 어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그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 자신의 불안과 갈등을 직시하며 더 깊은 사유를 키워냈습니다.
오늘 하루,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그 고요함 속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철학자들이 매일 고독 속에서 던졌던 그 질문을 우리도 오늘 한 번 해보길 바랍니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조금 더 깊어지고, 조금 더 진짜 자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일지도 모릅니다.'철학자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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