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하루

철학자들의 하루를 따라가며, 사유하는 습관, 말하는 용기, 걷는 태도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 2025. 7. 2.

    by. 철학자의 하루

    목차

       

      철학자의 하루 - 왜 많은 철학자들이 산책을 좋아 했을까?
      철학자의 하루 - 왜 많은 철학자들이 산책을 좋아 했을까?


      플라톤부터 니체, 칸트, 루소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이 왜 그렇게 산책을 사랑했을까요? ‘철학자의 하루’에서는 산책이라는 단순한 루틴 속에서 사유가 어떻게 자라고, 그것이 삶의 태도까지 변화시키는지를 철저히 탐구합니다.

       

      철학자들은 왜 그렇게 걷고 또 걸었을까? 


      우리는 종종 산책을 ‘시간이 남을 때 하는 가벼운 활동’ 정도로 여깁니다. 혹은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의무로 받아들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수천 년 철학사에서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유의 촉매였고, 때론 철학자들에게 유일한 정신적 피난처였습니다.

      ‘철학자의 하루’라는 블로그 대주제로 지난 시간까지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의 루틴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일상의 중요한 단서로 반복 등장했던 ‘산책’에 좀 더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하루 일과 속에 반드시 걷는 시간을 넣었을까요? 그리고 그 걸음 속에서 무엇을 얻었기에 그것을 삶의 중요한 습관으로 삼았을까요?

      이번 글을 통해, 산책이라는 작고 평범한 루틴이 철학자들의 사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사상과 생애를 형성했는지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일상 속에서 산책을 통해 조금 더 생각하는 삶을 살아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걷는 몸에서 깨어나는 생각들 

       

      철학자들이 산책을 선택한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몸을 움직일 때 뇌도 함께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다”는 속담 이상의 이야기입니다. 신경과학적으로도 일정한 걸음걸이는 뇌의 전두엽을 안정시키고, 불안을 진정시키며 창의적 연상과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니체는 이를 본능적으로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걸을 때 생긴다”라고 말했습니다. 산책길에서 문득 떠오른 단상들은 그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 《즐거운 학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니체의 사유는 탁자 앞에서가 아니라 숲길과 산속에서 길어 올린 것들이었습니다.

      플라톤 역시 자신의 아카데미아 정원을 거닐며 학생들과 철학을 나눴습니다. 플라톤 학파는 아예 ‘산책하는 철학자들(페리파토스 학파)’로 불릴 정도였지요. 그들에게 걷는다는 것은 앉아서 고정된 생각에만 파묻히지 않고, 몸의 리듬을 따라 사유를 더 멀리 끌고 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루소는 하루에 6~7시간씩 혼자 걸었습니다. 그는 걷는 동안만큼은 모든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했습니다. 그의 고백처럼, “나는 걷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다.” 루소에게 걷기는 몸을 움직이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었습니다.

       

      고독 속에서 깊어지는 질문들 

       

      철학자들에게 산책은 단순히 아이디어를 얻는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고독 속에서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지는 의식적인 루틴이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매일 두 차례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의 산책길은 늘 일정했지만, 머릿속 생각은 늘 다르게 흘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매번 개와 대화를 나누듯 걷는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만이 오롯이 자신을 마주하고 세상과 거리를 두며 철저히 사유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나 아렌트도 자주 걸었습니다. 그녀에게 걷는 시간은 타인과 사회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과 마주하는 소중한 고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산책을 통해 인간의 정치적 조건과 악의 평범성 같은 무거운 주제를 천천히 되새겼습니다. 도시의 소란에서 한 발짝 물러나야만, 현실을 더 명확히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니체 역시 혼자 걷기를 즐겼습니다. 그는 산책하면서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했습니다. 그렇게 걷는 동안만큼은 어떤 사회적 역할도, 철학자로서의 위엄도 내려놓고, 철저히 한 개인으로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독 속에서 가장 날카로운 질문들을 떠올렸습니다.

       

      반복되는 길 위에서도 사유는 매번 새로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자들은 산책을 할 때 항상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칸트는 매일 같은 거리를 같은 시간에 산책했습니다. 그 정도로 규칙적이어서, 동네 사람들이 칸트의 산책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왜 늘 같은 길을 걸었을까요? 새로운 자극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매일 새로이 사유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반복되는 환경 속에서 정신이 더 깊은 층위로 내려간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낯선 환경에 있을 때는 주위를 경계하고 정보를 수집하느라 집중력이 분산됩니다. 반면 이미 다 아는 길을 걸을 때는 주변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생각은 자연스럽게 더 깊은 곳으로 향합니다. 칸트에게 같은 거리의 산책은 몸은 자동으로 움직이고, 생각은 더 먼 철학적 문제로 뛰어오르게 만드는 장치였습니다.

      니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알프스 자락의 같은 산길을 수없이 걸으며, 《선악의 저편》 같은 통찰을 길어 올렸습니다. 숲길에서 마주치는 돌멩이, 작은 꽃송이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의 생각은 매번 달랐습니다. 같은 풍경은 결국 다른 사유를 담아내는 그릇이었습니다.

       

      산책은 삶을 철학으로 만드는 의식 

       

      철학자들이 보여준 산책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걷기’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것은 삶을 곧장 사유로 연결시키는 루틴이었습니다.
      루소는 산책하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가?” 그는 고독 속에서만 솔직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몽테뉴 역시 “나는 걷지 않으면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에게 산책은 자신의 의식 저편을 탐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몸이 걷는 동안 정신은 더 자유롭게 유영했습니다. 몽테뉴는 그 상태에서만 자기의 참된 모습과 직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철학자들에게 산책은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걸으면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다시 삶을 바라보며,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철저히 반추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산책을 통해 그들이 철학자가 될 수 있었던 비밀입니다.

       

      당신에게도 필요한 ‘생각의 산책’


      지금까지 왜 그렇게 많은 철학자들이 산책을 좋아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플라톤부터 니체, 루소, 칸트, 쇼펜하우어, 아렌트까지. 그들은 모두 걷는 루틴 속에서 사유를 키웠고, 삶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늘 새로운 질문을 던졌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매번 다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요즘 생각이 너무 산만하거나, 불안해서 스스로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모를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저녁이라도 잠시 스마트폰을 두고, 집 근처 익숙한 길을 걸어보세요.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걷는 시간이 쌓이면 어느 순간 불쑥, 정말 중요한 질문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철학자들의 하루는 결코 대단한 사건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같은 시간,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는 아주 단순한 습관 속에서 피어난 사유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하루도 그렇게 조금씩 철학자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걷는 루틴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사유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