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하루

철학자들의 하루를 따라가며, 사유하는 습관, 말하는 용기, 걷는 태도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 2025. 7. 1.

    by. 철학자의 하루

    목차

       

      철학자들의 하루 루틴은 자유를 구속하는 습관일까요? 아니면 자유를 확장하는 삶의 방식일까요? ‘철학자의 하루’에서는 루틴과 자유의 역설적 관계를 탐구하며, 우리 일상의 의미를 다시 살펴봅니다.

       

      매일 같은 하루, 그것이 자유일까요 구속일까요? 

       

      현대인들은 흔히 ‘루틴’이라는 말을 목표 달성이나 생산성, 혹은 자기 계발의 언어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매일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과연 자유일까?”라는 질문도 자주 떠올립니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을 걸어가고, 비슷한 방식으로 하루를 소비하는 것이 과연 자유로운 삶일까요, 아니면 무언가에 묶여 있는 삶일까요?

      ‘철학자의 하루’라는 이 블로그 시리즈에서는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자들의 루틴을 살펴봤습니다. 고대 철학자부터 현대 사상가들까지, 그들은 대부분 일정한 습관과 규칙을 통해 자신을 다듬어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연장선에서, 루틴과 자유가 과연 모순인지, 아니면 오히려 서로를 더 깊게 만들어주는 관계인지를 철학자들의 일상을 통해 다시 묻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사실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내 하루를 반복하고 있는가?” 혹은 “이 반복은 나를 자유롭게 하고 있는가?”

       

      규칙적인 삶이 자유를 해친다는 오해 

      루틴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일정한 패턴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삶은 이런 인식을 조금 다르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섰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산책을 보고 시계를 맞췄을 정도였습니다. 칸트에게 루틴은 억지로 자신을 조율하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루의 흐름을 일정하게 유지했기 때문에, 마음은 더 멀리, 더 깊게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몸이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여주면, 정신은 훨씬 더 가볍게 사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니체 또한 “나는 규칙적인 습관을 지니되, 그 습관 속에서만 진정한 자유가 가능하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즉 규칙은 우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방황과 혼란에서 지켜주는 일종의 안전장치였습니다. 일정한 루틴이 있어야만 사유와 창조가 흩어지지 않고 한 점으로 모여 강력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루틴과 자유는 역설적으로 맞닿아 있다 


      자유와 루틴은 겉보기에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두 개념은 놀랍도록 맞닿아 있습니다. 철학자들의 일상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한나 아렌트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신문을 펼쳤습니다. 정치 기사, 사설, 독자의 편지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세상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구성했죠. 그 일정한 루틴은 그녀에게 ‘정보의 소비’가 아니라, 세상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자유로운 사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역시 매일 같은 카페에 앉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구속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그 장소는 자유를 창조하는 무대였습니다. 같은 자리, 같은 풍경, 같은 커피잔 앞에서 보부아르는 언제나 전혀 다른 사유를 펼쳤고, 새로운 문장을 썼습니다. 루틴은 몸을 일정한 곳에 앉히되, 마음은 무한히 방랑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처럼 루틴은 표면적으로는 ‘제한’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인간은 더 큰 자유를 향유하게 됩니다. 일정한 습관은 의지력을 덜 소모하게 만들고, 진짜 중요한 고민과 창조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처학자의 하루 - 루틴과 ‘자유’는 모순일까?
      처학자의 하루 - 루틴과 ‘자유’는 모순일까?

       

      루틴은 자기 선택에서 시작될 때 비로소 자유롭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에게 루틴은 구속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는 자유로 다가올까요? 철학자들은 여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바로 ‘누가 그 규칙을 만들었는가’입니다.

      만약 외부에서 주어진 규칙—직장 상사의 스케줄, 사회적 압박, 타인의 기대—에 의해 루틴이 형성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자유를 침해하는 족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만든 규칙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데카르트는 매일 이불 속에서 생각했습니다. 그의 사유는 남들이 만든 규칙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스피노자는 정해진 시간에 렌즈를 연마하며 사유했지만, 그것 역시 자신이 선택한 방식이었습니다. 규칙은 외부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나와야 비로소 자유의 형식이 될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반복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만든 반복 속에서 더 깊이 자유를 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철학자들의 루틴에서 배워야 할 지점입니다. 자유란 결국 자기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규칙 속에서만 온전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루틴과 자유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다 

       

      우리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루틴’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숨이 막히는 이유는, 그것이 내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요? 철학자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조금도 답답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일상이 자신의 선택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틴은 그래서 ‘무엇을 반복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나는 이것을 반복하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루틴과 자유를 잇는 결정적인 고리입니다. 철학자들은 늘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니체는 산책을 하며, 칸트는 시계를 보고, 보부아르는 카페에서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 속에서 그들은 매일 조금 더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습니다.

       

      당신만의 자유로운 루틴을 설계해 보세요


      결국 루틴과 자유는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철학자들의 하루를 따라가며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하고 반복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요.

      그러니 오늘 하루, 조용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나는 어떤 루틴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순간, 당신은 이미 철학자들의 삶에 한 발 다가서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