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루틴 – 인간 존재의 구조인가?

 

‘철학자의 하루’에서 이번에는 반복과 루틴이 과연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구조인지 탐구합니다. 철학자들의 일상에서 반복되는 루틴이 어떻게 삶과 사유를 지탱해 주는지 함께 살펴보며, 우리 자신의 하루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왜 똑같은 하루를 살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지겨워.” 출근길에 늘 같은 지하철, 같은 사람들, 같은 업무. 퇴근 후에는 똑같이 저녁을 먹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듭니다. 우리 삶에는 왜 이렇게 반복이 많은 걸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 ‘반복’은 사실 인간 존재를 지탱하는 근본 구조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철학자의 하루’라는 대주제 아래, 철학자들이 보여준 루틴과 반복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단순히 “습관이 중요하다”거나 “규칙적인 삶이 좋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반복을 필요로 하는 구조인지, 반복과 루틴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사유를 하고 어떤 존재가 되는지, 철학자들의 일상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겠습니다.

 

반복과 루틴, 철학자들은 그것을 ‘조건’으로 삼았다 

우리가 이전 글에서 살펴본 수많은 철학자들의 하루를 다시 떠올려보세요. 칸트가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섰고, 니체가 같은 숲길을 수없이 걸으며 사유를 했습니다. 플라톤이 늘 같은 정원을 거닐며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보부아르가 늘 같은 카페에 앉아 글을 썼습니다. 쇼펜하우어는 하루에 두 번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이 반복은 단지 편의나 취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반복되는 루틴은 철저히 사유를 위한 조건이었습니다. 반복을 통해 의식은 더 이상 주변의 자극에 신경 쓰지 않게 되고, 뇌는 깊이 잠수하듯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뇌는 사실 늘 낯선 것을 경계합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정은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게 만듭니다. 그 상태에서는 철학적 질문에 몰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루틴을 만들어 그 불필요한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그 자리에 사유를 채워 넣었습니다.

칸트가 늘 같은 길을 걸은 이유는 단순히 게으르거나 새로움을 싫어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길을 걷는 동안에는 주변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생각은 훨씬 멀리까지 뻗어나갔습니다. 그렇게 반복 속에서만 가능한 사유가 있었습니다.

 

반복은 존재를 지탱하는 구조였다 

 

조금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과연 인간은 왜 이렇게 반복적인 행동을 할까요?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원회귀’라는 사유를 제시합니다. 그는 인생이 무수히 반복된다고 상상했습니다. 같은 고통, 같은 기쁨, 같은 실수와 같은 깨달음이 끝없이 반복되는 세계. 그 상상을 견딜 수 있는 자만이 진정으로 자기 삶을 긍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철학자의 하루 - 반복과 루틴 인간 존재의 구조인가?

반복은 니체에게 인간 존재를 괴롭게 만드는 무게이자 동시에 그것을 돌파하는 실존적 시험이었습니다. 그는 “동일한 것을 반복할 수 있는 힘, 그것을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의지야말로 초인의 조건”이라고 보았습니다.

쇼펜하우어에게도 반복은 인간을 지배하는 본능이자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의지가 세계를 무한히 반복하게 한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하고 같은 욕망을 반복하며,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스러운 반복을 철저히 인식하되, 오히려 의도적으로 일정한 루틴(산책, 독서, 사유)을 통해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했습니다.

 

반복 속에서 사유는 조금씩 다른 결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반복은 단지 지루하기만 한 걸까요? 철학자들의 하루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똑같은 길을 걸어도, 똑같은 카페에 앉아도, 그들은 매일 조금씩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반복되는 환경은 오히려 사유가 더 미묘하게 변주될 수 있는 안전한 배경이었습니다.

루소는 매일 숲길을 걸었지만, 그 길에서 하루도 같은 사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는 걸을 때마다 어제보다 조금 다른 나를 만난다”라고 말했습니다. 몸이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니, 마음은 그 안에서 오히려 더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같은 피아노 건반을 쳐도 날마다 미세하게 다른 소리가 나는 것처럼요.

몽테뉴도 매일 방 안에서 같은 책상에 앉아 글을 썼습니다. 그 반복은 그의 사유를 안정적으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같은 생각을 두 번 할 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루틴 속에서조차 사유는 늘 조금 다른 모양으로 자라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존재의 신비였습니다. 반복 속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같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말이죠.

 

결국 반복은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조건 

 

철학자들의 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은 반복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심장이 박동을 반복하고, 폐는 호흡을 반복합니다. 삶 자체가 리듬이고, 그 리듬은 반복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의식과 사유도 그 구조를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루틴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 자신을 밀어 넣음으로써 사유를 안정시키고, 존재의 불안을 다스렸습니다. 같은 산책길, 같은 글쓰기 시간, 같은 방 구조 속에서 생각을 반복했고, 그 안에서 조금씩 더 깊은 깨달음으로 나아갔습니다.

이처럼 반복과 루틴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작동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철학자들은 그것을 가장 철저히 이해하고, 의식적으로 활용했던 사람들입니다.

 

당신의 루틴은 무엇을 지탱하고 있나요?

 

오늘 우리는 ‘반복과 루틴 – 인간 존재의 구조인가?’라는 질문을 따라 철학자들의 일상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그들의 하루는 지루할 만큼 규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규칙과 반복이 철학적 사유를 낳는 조건이 되었고, 존재의 불안을 지탱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같은 하루를 사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반복 속에서만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같은 커피잔, 같은 출근길, 같은 자리에서 앉아 있더라도, 오늘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어제와 조금 다를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 존재의 미묘한 반복이며, 삶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리듬입니다.

오늘 하루도 똑같은 일정이 반복될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작게라도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지금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가? 그 반복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그 질문을 매일 던지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루틴은 철학자들의 루틴처럼 조금 더 깊은 사유를 위한 구조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