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처럼 걷기 - 걷는 시간 사유법

철학자들은 왜 그렇게 자주 걸었을까요?

플라톤, 소크라테스, 니체, 루소, 몽테뉴 같은 사상가들이
걸으면서 사유했던 이유를 탐구하고,
저 스스로 실험해 본 ‘걷는 사유 루틴’에서 발견한 작지만 깊은 깨달음을 나눕니다.
‘철학자의 하루’ 블로그에서 오늘은 걷는 시간과 철학적 사유의 관계를 함께 걸어보세요.

 

철학자의 하루 - 철학자처럼 걷기

걷는 일은 너무나 일상적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는 걷기의 위대함을 종종 잊어버립니다.
저 또한 예전에는 걷는 시간을 단지 이동을 위한 ‘틈새 시간’으로만 여겼습니다.
출퇴근길, 약속 장소로 향할 때, 혹은 슈퍼에 장을 보러 갈 때—
걷기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철학자의 하루’라는 이름으로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루소, 몽테뉴,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걷기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걷는 시간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깊은 사유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철학자들처럼 걸어본다면,
내 생각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 대화하며 걷는 자들의 지혜

 

플라톤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뒷골목, 정원, 체육장, 시장터를 걸으며 대화했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면,
그 중요한 대화들이 항상 걷는 중에 이루어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멈춰 선 상태에서 긴 설교를 하기보다는
상대와 함께 걸으며 물음을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걷는 리듬 속에서 사람들의 방어가 조금씩 풀리고,
머릿속도 점점 유연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저도 친구와 산책하며 이야기할 때
카페에서 마주보고 앉아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 걷는 강의 ‘페리파토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소요학원)에서
제자들과 함께 걸으며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학파 이름 ‘페리파토스(Peripatetic)’ 자체가
‘산책하며 가르치는 사람들’을 뜻하죠.

그들은 복도를 천천히 거닐면서
우주와 윤리, 행복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걸으면서 숨을 고르고,
사유를 조금 더 멀리 던지곤 했습니다.

저는 이런 장면을 상상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생각은 걸음과 함께 자란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조금씩 깨닫기 때문입니다.

 

루소 – 걷기는 마음의 약이다

장 자크 루소는 걷기의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생각하고 싶을 때는 걸어야 한다.”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루소에게 걷기는 정신을 치유하는 약과 같았습니다.
“나는 걸을 때만 진정 나 자신이 된다.
걸음을 멈추자마자 다시 작은 존재가 된다.”

저도 이 말을 곱씹으며
혼자 골목을 걸을 때 마음이 비로소 조금 자유로워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앉아서 아무리 깊게 생각하려 해도 잘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걸음을 옮기는 순간 마치 스르르 매듭이 풀리는 듯했습니다.

 

니체 – 숲길에서 신을 죽이다

니체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숲길을 몇 시간씩 걸었습니다.
그 숲길에서 그는
“신은 죽었다” “영원회귀” 같은 사유를
수천 번 되뇌며 천천히 빚어냈습니다.

니체는 서재에서 글을 쓰는 것보다
걷는 시간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모든 진정 위대한 사상은 걸으면서 탄생했다.”
이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저도 니체를 따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는 실험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자,
그 길 위에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사유를 조금씩 다르게 이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몽테뉴 – 걷는 자의 회고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자신이 걷는 동안 가장 풍성한 사유를 한다고 썼습니다.
그는 마차에 앉아 있을 때보다
두 발로 땅을 딛고 걸을 때
더 많은 질문이 자신을 찾아온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을 때
마치 먼 친척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저 또한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생각이 금방 산만해지고 흩어졌는데,
걷기 시작하면 묘하게도
하나의 주제가 길게 이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걷는 철학 루틴

이 모든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자극받아
저도 작은 루틴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 같은 시간 (저녁 7시)
- 같은 길 (우리 집 앞 작은 공원 둘레길)
- 30분간 묵묵히 걷기

처음엔 조금 어색했습니다.
평소엔 산책할 때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엔 아무것도 듣지 않고
오직 제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만 들었습니다.

3일쯤 지나니
“왜 이 생각을 계속 붙잡고 있지?” 같은
작은 질문들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5일째, 같은 길을 걸으며
어제 떠올린 생각을 다시 되새기게 되더니,
일주일째는 하나의 주제가 마음속에서 조금 더 단단해졌습니다.

 

걷기의 심리학 – 리듬과 깊이

왜 걷는 시간이 이런 사유를 가능케 할까요?
저는 심리학 책과 뇌과학 책을 조금 뒤져봤습니다.

걸을 때 우리 뇌는 반복적인 리듬에 동조됩니다.
그 리듬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을 낮추며,
기억과 상상력을 관장하는 해마를 활성화시킵니다.

그 덕분에 걷는 동안
잡념이 줄어들고
생각이 조금 더 깊고 길게 이어지기 쉽습니다.
니체와 루소가 걸으면서 사유했던 이유를
조금은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독자님께 드리는 작은 질문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조심스럽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지금, 무의식적으로 걷는 시간을
단순한 이동 시간으로만 보내고 있진 않나요?

걸을 때 스마트폰을 보거나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아
사유의 공간을 애써 막고 있진 않나요?

혹은 너무 바빠서 아예 걸을 기회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요?

철학자들은 바빠서 걷지 않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 일부러 걸었습니다.
우리도 오늘부터 조금 더 의도적으로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걷는 시간은 당신만의 철학 수업

플라톤의 정원 산책,
소크라테스의 아테네 골목 산책,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 소요,
루소의 숲길,
니체의 숲,
몽테뉴의 시골길…

그들에게 걷는 시간은
생각을 키우고, 마음을 살피는
작은 철학 수업이었습니다.

저도 이번 작은 실험을 통해
걷는 시간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 아니라
내 사유가 깊어지고 마음이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소중한 루틴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여러분도 오늘부터
아주 짧게라도 같은 시간, 같은 길을 걸어보세요.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어떤 질문이 떠오르는지,
그 질문이 내일은 또 어떻게 달라지는지
조용히 지켜보세요.